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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카즈사토]

W. 감자

동거? 처음에 하자고 할 때나 좋았지. 지금은 좋은 점 보다는 싫은 점 말하는게 더 쉬울 걸. 가장 싫은 거? 죽도록 싸우고 헤어져, 다시는 안 봐 어쩌고 저쩌고 해도 결국 한 집에서 다시 마주친다는 거?

 

*

싸움의 시작은 사실 별 거 아니었다.

 

원래 사소한 것으로도 잘 투닥이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먼저 다가오는 그놈 덕분에 언제나 싸움은 별 거 아닌 것으로 끝났다. 적어도 전까지는 그랬다. 시시콜콜한 말싸움 사이에 오노 사토시가 한숨을 내쉬기 전까지는.

"왜 이젠 질렸냐?"

"니노, 그런게 아니라."

"질렸으면 말로 할 것이지 한숨을 쉬고 있어?"

"내가 미안해 응? 그런게 아니야."

"너 진짜 나쁜 새끼야 알아?"

그게 아니라는 말에 됐어 듣기 싫어라고 답하니 무어라 말하려던 입이 꾹 다물렸다. 울면 지는 건데, 그냥 평소처럼 좀 져주고 안아주면 어디가 덧나냐? 니노미야는 뿌옇게 변하는 제 시야를 들키지 않으려 급하게 제 팔로 눈가를 훔치고 앞에 있는 망할 오노 사토시를 노려봤다. 듣기 싫다 했다고 정말 아무말도 안 해? 진짜 끝내고 싶은 건가? 아님 뭐 끝까지 가보고싶다는 거야? 사귄지 3년 동안 다 받아주다가 이제와서 터지기라도 한 거냐고. 목끝까지 차오르는 말을 꾹꾹 씹어 삼킨 니노미야는 달아오르는 눈을 꾹 감았다 떴다. 저 앙, 다물린 입술이 벌어져 무슨 말이 나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속이 더 타들어가만 갔다. 어떤 말이든 듣고 싶지 않아, 헤어지자는 말이라면 더더욱. 차라리 듣기 전에 먼저 내지르는게 나았다. 이건 일종의 자기방어였다. 알량해보일지 모르는 자존심을 지키려는.

"됐어, 너 아무말도 하지마. 우리 끝이야, 끝."

내지르는 듯 말을 쏘아붙인 니노미야는 오노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등을 보이고 그대로 도망치는 듯 집을 나섰다. 진짜 최악이었다. 이 상황까지 와버린 별 거 아닌 싸움의 시작도, 제 알량한 자존심도, 질렸다는 듯한 오노의 행동도. 그 중 가장 최악인 것을 뽑으라면 ...그 집말고는 갈 곳이 없다는 것 정도? 급하게 나온다고 지갑도 챙기지 못해 주머니엔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은 핸드폰과 몇백엔 뿐이었다. 진짜 불쌍해 니노미야 카즈나리.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동정을 스스로에게 건네며 니노미야는 집 근처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서늘한 바람이 스치는 제 팔을 감싸 문질렀다.

"내가 지 옆 아니면 뭐 갈 곳도 없는 줄 알고?"

코를 한 번 훌쩍인 니노미야는 핸드폰 주소록 제일 위에 보이는 오노 사토시의 번호를 노려보다가 빠르게 스크롤을 내렸다. 그래봤자 주소록에는 몇사람 없지만은. '아이바' 라고 적힌 이름을 누르고 두어번의 신호음이 지나고 나서야 수화기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아이바 지금 뭐해?"

"어, 니노? 나 지금 쇼 만나러 가는데."

지금? 왜 하필 지금이야? 쏘는 듯한 니노미야의 질문에 아이바는 에에? 니노 무슨 말이야? 라며 되물었다. 무어라 말하려다가 제 기분을 괜히 다른 곳에 쏘아붙이는 것 같아 니노미야는 됐어 짧게 말을 하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사쿠라이를 만나러 간다더니 수화기 너머에서는 아이바 말고도 다른 목소리가 들렸고, 아 쇼! 아아 맞다 잠깐만, 니노 여보세요? 하고 들리는 아이바의 목소리에 니노미야는 됐어, 잘 놀아 라고 말하며 하며 전화를 끊었다. 얼마 있지 않아 다시 전화가 울리고 화면에 '아이바' 라고 적힌채 떴지만 니노미야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저 친한 친구가 실연의 상처가 가득한 친구를 버려둔 아이바가 야속해 화면에 뜬 이름만 노려볼 뿐이었다. 내가 이렇게 갈 곳이 없었나, 물론 주머니에 아무것도 들고오지 않아서이지만. 끊긴 전화를 뒤로 하고 니노미야는 몇 없는 주소록을 훑었고 그 중 한 이름에서 손이 멈췄다. 얘한테는 연락하기 싫은데. 가로눈을 뜨고 화면 속에 있는 '마츠모토 준' 이라는 이름을 잠시 바라보다가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뜨는 경고화면에 짜증 섞인 한숨을 내뱉으며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이 받기까지 들리는 신호음은 길지 않았고 "여보세요?"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다짜고짜 본론부터 말하는 니노미야의 태도에 전화를 받은 목소리의 주인은 허- 하는 바람 빠진 소리를 냈다.

"어차피 할 것도 없잖아?"

"작업 중인데."

"나 갈 곳 없어."

꼭 이유를 말하게 만들지, 재수 없어. 지금은 스스로가 아쉬운 상황이니까. 니노미야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놓고는 귀에 대고 있던 핸드폰을 한 번 노려봤다가 다시 귀에 댔다.

"싸웠어요?"

질문에 니노미야는 굳이 대답을 하지 않았다. 고집 있는 침묵에 마츠모토는 소리를 내 웃었고 얄미운 웃음소리에 전화를 끊어버릴까 하다가도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을 줬다.

"주소 문자로 보내줄게요, 거기로 와."

"택시비 없어. 네가 내."

"봐서."

그렇게 전화는 끊겼다.

니노미야는 끊긴 전화 화면을 노려봤다. 갈 곳 없으니까 참는다. 짧게 한숨을 쉬면서 핸드폰을 넣으려다 진동하며 전화가 걸려왔고 '오노 사토시' 라는 이름에 니노미야는 가만히 화면을 바라볼 뿐이었다. 바라만 본 탓에 받지 못한 전화는 끊겼고 받을 때까지 할 기세인지 전화는 또 한 번 걸려왔다. 받아야하나 고민하고 있는 사이에 전화는 또 한 번 끊겼고 배터리가 없는 핸드폰은 그와 동시에 끊기고 말았다. 이럴려는 건 아니었는데. 억지로 다시 켜려고 해도 완전히 방전된 핸드폰은 반응이 없었고 니노미야는 짜증스럽게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택시를 불러 세우고 마츠모토가 보낸 주소를 말하며 등을 기대어 창밖을 바라봤다. 오노 사토시 완전 짜증나.

 

*

 

니노미야는 테이블에 턱을 괴고 앉아 웃으며 손을 흔드는 마츠모토를 노려봤다. 아이바는 자리에서 일어나 니노미야의 등을 떠밀며 일단 앉자, 니노 응? 하면서 마츠모토 옆에 앉혔고 니노미야는 제 맞은 편에 앉은 아이바와 사쿠라이를 팔짱낀 채 바라봤다.

"너희가 왜 여기에 있어?"

니노미야의 신경질적인 질문에 아이바는 눈을 굴리다 마츠모토를 바라봤고 사쿠라이는 웃으며 마츠모토가 불러서 왔지. 라고 대답했다. 재수없는 새끼. 딱 보니까 상황 다 알고 불렀구만. 니노미야는 시선을 흘기며 마츠모토를 봤고 따가운 시선에 그는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

 

제 앞에 내밀어진 첫잔을 시작으로 니노미야는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안주는 변해버린 오노 사토시에 대한 고찰 정도랄까. 고찰이라는 것도 없이 오노의 태도에 대한 니노미야의 하소연이 전부였지만. 어떻게 나랑 이야기 하는데 한숨을 쉴 수가 있어? 니노미야의 주정 섞인 하소연에 다들 위로해주는 분위기었지만 중간에 섞여 들리는 코웃음 소리에 니노미야는 제 옆쪽을 흘겨봤다.

"뭐가 웃겨?"

"그렇게 갖잖게 하소연 할 거면 얼른 헤어졌으면 좋겠다 싶어서요. 그리고는 내가 사귈까 해서?"

"너랑 내가?"

"미쳤어요?"

낄낄, 니노미야의 웃음소리에 마츠모토는 진심으로 불쾌하다는 듯 얼굴을 구기고는 차있는 잔을 단숨에 비우고 낮은 숨을 내쉬었다. 그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니노미야는 또 한 번 소리를 내 웃었다. 나도 너는 사양이거든? 너 오노 사토시 볼이 얼마나 말랑말랑한 줄 아냐? 모르지? 평생 모를거다. 니노미야의 이죽거리는 목소리에 마츠모토는 손에 쥔 잔을 힘주어 잡았다. 누군가는 유치하다고 말할지도 모르는 도발을 하는 니노미야나, 거기에 넘어가는 마츠모토나. 둘을 바라보고 있던 아이비와 사쿠라이는 마주치는 서로의 시선에 짧게 숨을 내쉬었다.

 

 

*

 

니노미야가 눈을 떴을 땐 누군가 저를 등에 엎고 터덜터덜, 길을 걷고 있는 탓에 술기운과 함께 땅이 울렁거렸다. 마지막 기억은 오노 사토시를 두고 마츠모토놈이랑 술 내기를 했던 것 같은데. 유치해. 그러고 싶지 않은데 오노 사토시에 관해서는 한없이 유치해지고 치졸해지는 기분이었다. 별 것도 아닌거에 눈물이 나고 별 것도 아닌 거에 짜증이 나고 승부를 부리는 그런. 뭉근한 술기운에 니노미야는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뜨고는 기대어 있는 등에 뺨을 작게 부볐다. 저를 업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얼굴 조차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아이바나 사쿠라이겠지. 오노 사토시를 여지껏 따라다니는 재수 없는 마츠모토 준일 리는 없으니까. 이대로 집에 가긴 싫은데, 집에 가면 걔가 있을 거고 ....가면 진짜 끝일지도 몰라.

"오노 사토시 완전 짜증나."

뭉개진 발음 사이로 나오는 말에 별다른 답은 없었지만 니노미야는 딱히 신경을 쓰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내가 지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르고 질려하는 나쁜놈."

"그래? 걔가 나빴네."

"야 ..그래도 완전 나쁜 놈은 아니야. 그래도 걔가 ..어? 웃을 땐 예뻐. 뭐라고 하지마 나만 할 거야."

웅얼거리는 목소리에 니노미야는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듯 입 삐죽였다. 그리고? 웃을 때 예쁘고 또 뭐가 좋은데? 이어지는 목소리에 니노미야는 눈을 꿈뻑였다. 땅이 올라오는 것 같아. 일렁여. 질문과는 전혀 상관 없는 답을 내놓으며 제 뺨에 닿은 등에 얼굴을 파 묻었다. 코 끝에 묻는 익숙한 체향에 내려감았던 눈을 뜨고 고개를 살짝 들어 눈 앞에 보이는 익숙한 둥근 뒷통수에 또 한 번 눈을 꿈뻑였다.

"야."

"응?"

"....내려줘."

"술 많이 마셨잖아.

내려줘. 단호한 목소리에 멈춰진 걸음에 니노미야는 닿았던 등을 밀어냈다. 땅에 발이 닿는 순간 일렁이는 술기운에 살짝 눈이 도는 것 같았지만 꾹, 숨을 한 번 참았다가 내쉬고 제 앞에 있는오노 사토시의 얼굴을 마주했다. 둘 사이엔 잠깐의 침묵이 돌았고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니노미야였다.

"여긴 왜 왔어."

"술 많이 마신 것 같아서. 핸드폰도 꺼져있었잖아."

약간의 타박이 담긴 걱정 섞인 말에 니노미야는 배터리가 나간 핸드폰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직전에 전화를 했던 오노 사토시도. 흐릿한 시야가 선명해지기를 기다리다 눈에 들어온 오노의 얼굴은 화가 난 것 같지도 그렇다고 기뻐보이는 얼굴도 아니었다. 눈 끝이 조금 내려간 것이 슬픔이 담겨 있는 것 같기도. 이젠 왜 그렇게 싸웠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그저 그 순간의 서운함이 가슴 한 구석에 내려 앉아있을 뿐이었다. 영원히 풀지 못할 것만 같은 서운함이. 내가 먼저 미안하다 말하면 상황이 나아질지도 모른 다는 것을 알면서도 꾹 다물린 입술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니노."

저를 먼저 부르는 목소리에 니노미야는 그저 눈 앞의 오노 사토시를 지그시 바라볼 뿐이었다. 꾹 다물린 입술, 구겨진 미간사이에 오노는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뜨고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돌아가자, 집으로."

이 관계에 있어서 주도권은 스스로에게 있을지 모른다고 니노미야는 언젠가 생각했던 것을 떠올렸다.

저를 바라볼 때마다 쩔쩔 매는 오노 사토시가 좋아서,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오노 사토시가 저를 사랑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어서, 네가 나를 좋아하는 건 당연하니까 이 관계에 있어서 위에 있는 건 니노미야 자신이 아닐까 라는 그런 생각들. 네가 나를 떠나가도 나는 괜찮다고 생각을 했는데 말이야, 정말로 끝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말이야. 이 감정이 무엇인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오노 사토시에게 말할 일은 평생이 가도 없을 것이다, 절대로. 쩔쩔 매는 얼굴은 제법 ...귀여우니까.

니노미야는 허공에 내밀어진 손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눈을 꿈뻑였다. 머뭇머뭇 손을 따라 내밀자 제 앞에 있던 손은 니노미야의 손을 재빠르게 겹쳐 잡고 웃었다. 돌아와줘서 고마워, 니노.

"이번에만 봐주는 거야 내가. 웃지 마, 정들어."

"내가 미안해, 응?"

"또 그러기만 해 봐."

안 그럴게, 미안해. 제 손을 잡고 흔드는 걸 가만히 바라보다가 니노, 하고 부르는 목소리에 바라보니 가볍게 맞부딪히고 떨어지는 입술에 니노미야는 표정을 구기다가도 이내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내었다.

"너 진짜 짜증나. 진짜로. 이건 진심이야. "

"응, 나도 너 사랑해."

허? 사랑하면 잘 해. 퉁명스러우면서도 웃음기 섞인 목소리에 오노는 흐흥- 소리내 웃고는 맞잡은 손을 그저 힘주어 잡을 뿐이었다. 사랑해- 라고 다시 한 번 속삭이며.

*

동거? 처음엔 걱정이 됐는데 지금은 좋은게 더 많지. 가장 좋은 거? 서로 안 볼 것처럼 싸워도 결국엔 한 집에서 다시 본다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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