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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사쿠사토]

W. 바르

  밤이 새카맸다. 아주 광활했다. 외로웠다. 모두가 떠나간 밤, 기댈 곳 하나 없이 위태롭게 서있었다. 누군가 쓰러져버릴 자신을 잡아주길 바라면서.

  오노의 한숨이 공허한 공간을 가득 채웠다. 이렇게 또 하루를 보내긴 싫어, 하고 중얼거려 보았지만 딱히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오늘도 차가운 베란다에 몸을 뉘었다. 몸이 파르르 떨리며 얼어붙었다.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거실에 들어갈 순 없었다. 어둠이 무서웠다. 혼자 있는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어렸을 때 부모와 떨어지고 고아원 같은 곳에서 자란 탓인지 그는 혼자 있는 것을 질색했다. 엄격했던 선생님들, 그리고 어디론가 팔려나간 아이들. 그 기억은 지우고 싶었지만 너무 선명했다. 혼자 있으면 누군가가 자신을 데리고 어디론가 가버릴 것 같았다. 버려진 듯한 기분도 아주 역겨웠지만 거기에 더해진 공포심이 그를 괴롭혔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 날, 느린 걸음으로 마트에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오노가 개척한 지름길 골목에 누군가 힘없이 쓰러져있었다. 옅게 붙은 숨을 힘겹게 내뱉으며 얼굴을 잔뜩 구긴 그를 보고 오노는 이상한 끌림을 느꼈다. 당장 장 본 것들이 들어있는 비닐 봉지를 손목에 끼우고 쓰러져있는 소년을 들어올렸다. 그리곤 빠른 걸음으로 집까지 발을 재촉했다. 모르는 사람이라곤 치가 떨리도록 싫어하는 오노인데 알 수 없는 다급함이 어서 소년을 구하라고 재촉했다. 집에 데려와서는 바로 소파 위에 그를 눕혔다. 간신히 숨만 쉬고 있는 그에게 따듯한 수건도 올려주고 여기저기 묻어있는 흙과 아스팔트 가루들도 모두 닦아주었다. 그렇게 한참을 모르는 누군가에게 온 정신을 쏟아부은 뒤에야 자신의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장 봐온 식재료들을 차곡차곡 냉장고에 넣고 소파 옆에 기대어 앉았다.

  “어디야...?”

  “깼어?”

  오노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누구...”

  “아, 아 미안... 난 오노 사토시. 여긴 우리 집.”

  “구해준 거야?”

  “그런 셈이지.”

  어떨떨한 표정으로 오노가 대답했다. 무언가를 생색내고 싶은 건 아니었고 오히려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도 놀란 참이라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넌 이름이 뭐야? 나랑 비슷한 나이인 거 같은데.”

  “나는 사쿠라이 쇼. 16살.”

  “아, 난 열일곱. 뭐라도 먹을래? 내가 원래 장도 잘 안 보고 밥도 잘 안 먹는데 이상하게 오늘 마트에 가고 싶더라.”

  자신도 모르게 입이 멋대로 쓸데없는 것까지 털어버렸다. 사쿠라이는 처음엔 당황하는 듯 했지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좋다고 대답했다.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지금 따질 때가 아니었다. 당장에 죽을 고비에서 살아났기 때문에 무슨 방법이라도 취해서 살고 싶었다. 대답을 들은 오노는 곧장 도마랑 칼을 꺼내 방금 산 채소들을 잘게 다졌다. 그리곤 즉석밥을 뜯어 프라이팬 위에 쏟았다. 볶음밥을 만들어줄 생각이었다. 모든 충동들이 이해할 수 없었고 어색했다. 도대체 왜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방금 산 신선한 채소들을 다져주고 뜨거운 수건을 내어주게 되었는지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제멋대로 움직이는 손을 멈출 수는 없었다. 말도 막 걸고 싶었다. 그래서 눈만 요리에 고정하고 얼른 입을 열었다.

  “아깐 왜 거기 쓰러져있던 거야?”

  “도망쳤어.”

  아차 싶었다. 괜한 욕심에 건드려선 안 될 부분을 들쳐낸 것 같아서였다.

  “아... 미안.”

  “아냐. 뭐가 미안해. 나 범죄자 그런 건 아냐.”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

  “실험실에서 도망친 거야.”

  “실험실?”

  오노는 얼핏 도시 외곽에 큰 실험실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던 걸 떠올렸다. 그러나 뭘 하는 데인지는 듣지 못했기에 사쿠라이가 거기서 일을 했나 하는 추측만 할 수 있었다.

  “거기서는 뭐 하는데?”

  “인체 실험.”

  사쿠라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충격적이었다. 설마 그가 피실험체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에 다급하게 애호박에서 떨어진 왼손이 입을 틀어막았다. 그에게 완전히 실수했다고 생각했다. 자신도 고아원에서 극적으로 누군가에게 구원받아 이 집으로 나온 이후 고아원에 대한 얘기를 들을 때마다 몸서리가 쳐졌는데 똑같은 실수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니 어디론가 숨고만 싶었다. 그러나 사쿠라이는 한 치의 떨림도 없이 말을 이어갔다. 오노는 어쩌면 그가 자신을 배려해주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 목에 보면 실험체 번호 적혀있어. 그래봐야 내 생일일 뿐인 숫자지만. 그래서 난 생일 싫어. 그 날이 되면 다들 선물을 받는다고 속임당하고 괴로운 실험이나 더 당할 뿐이니까. 신체 능력을 극대화 하는 것부터 염력 생성까지, 누가 봐도 안 될 것같은 실험까지 모조리 다 하더라고. 그래서 도망쳤어. 형이 방금 날 살려줬고. 고마워.”

  한동안 침묵이 감돌았다. 오노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머리마저 새하얘져서는 어색하게 볶음밥을 이리저리 뒤적거렸다.

  “미안. 볶음밥 다 됐다.”

  오노가 널따란 그릇에 밥을 담아 사쿠라이에게 내밀었다. 눈동자가 그를 쳐다보지 못하고 옆으로 굴렀다.

  “날 왜 구해준 거야? 혼자 사는 것 같은데.”

  “몰라. 그냥 그러고 싶었던 것뿐이야.”

  “형은 참 착한가봐.”

  “아 나도 모른다니까.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아마도 너라서 그랬던 거 같아. 그 이상은 나도 이해가 안 돼. 난 원래 사람 싫어해.”

  “사람을 왜 싫어해?”

  “버림받았으니까. 두 번 당하는 것보단 죽는 게 나아.”

  서로에게 다르지만 비슷한 상처가 있다는 것을 안 사쿠라이는 오노에게 더 가까워짐을 느꼈다. 투덜대고 있는 오노지만 그도 비슷하게 여린 사람일 거라고 어림짐작했다. 모르는 사람을 데려와 밥까지 챙겨주는 걸 보면 필시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고 나자 속에 있던 말이 저절로 입 밖으로 나왔다.

  “형, 나 여기서 살고 싶어.”

  “그러던지.”

  “엥, 진짜?”

  너무 쉽게 나온 대답에 농담인가 하고 오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지만 얼굴은 한껏 진지했다.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크게 안심했다. 도망쳐 나오자마자 몸을 숨길 곳이 생겼으니 생존엔 문제 없었다.

  동거 허락을 맡은 후에는 서로의 인생에서 가져보지 못했던 긴 대화의 시간을 나누었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 어떤 삶을 살았었는지, 서로의 취미며 취향은 무엇인지 중요한 것부터 사소하고 쓸모없는 정보까지 모든 것을 나누었다. 그것이 그들만의 신뢰의 형태였다. 마주보고 밥을 먹으며 처음으로 얼굴에 웃음꽃을 피워보고 음식의 맛을 음미했다. 창밖을 구경하기도 하고 한참 서로의 얼굴을 응시하기도 했다. 처음으로 괴로움에서 벗어난 듯 느꼈다. 그렇게 낮 시간을 보내고 어느덧 집 안까지 깊숙하게 들어오던 햇빛은 온데간데 없고 창밖에 커다란 달만이 은은하게 오노의 집을 비추고 있었다. 오노는 슬슬 몸이 차갑게 식어감을 느꼈다. 거의 하루 종일 사쿠라이와 함께 한 덕분에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푸르게 빛나는 달과 마주하니 금새 온기를 전부 뺴앗기는 것이었다. 그가 고아원에서 구원받은 날도 그러했다. 큰 보름달이 높이 떠서 고아원을 비추었다.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담을 넘은 자신 뒤로 서너명의 아이들이 차에 실려갔다. 오노는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절대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그리고 깨달았다. 자신도 구원이란 이름 하에 버려지고 있는 것이라고. 텅 빈 집에 덩그러니 남겨진 후 확신했다. 공포스러운 고아원을 탈출하는 대신 완전히 자신을 도와주는 손길은 사라졌다. 하지만 누구나 그런 도주의 주인공에게 가담했다는 것이 밝혀지면 고아원 관리자들에게 당할 것이 뻔했기에 모든 걸 알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만 조금이라도 밝은 베란다에서 자는 것뿐이었다. 공간이라는 것이 자신을 둘러싸는 것이 두려웠다. 새카만 천장을 보고 있자면 어린 날의 기억들이 뼈아프게 자신을 관통했다. 지금도 스멀스멀 내부에 몸을 숨기고 있던 트라우마의 날카로운 끝이 심장을 마구 찔러댔다. 쪼그라들 듯 아려오는 심장을 부여잡고는 그대로 웅크렸다. 달이 완전히 떠서 지붕 위로 올라갈 때까지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처음으로 맞이하는 둘의 밤은 혼자보다 나았다. 두 눈을 온전히 감고 누워 처음으로 편안하게 잠을 청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 명은 그러지 못했다. 사쿠라이는 창고 방에 있던 정리용 상자 중 가장 큰 걸 들고 나와 거실 한복판에 떡하니 놓았다. 오노는 왜 그러냐고 물었지만 사쿠라이는 불편한 표정으로 박스를 바라보기만 할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노도 더 이상은 물어보지 않았다. 듣지 않아도 실험실의 영향인 건 확실했다. 아니나 다를까 오노가 씻고 나오자 사쿠라이는 자신의 몸을 구기고 구겨 장난감 정리 상자 안에 들어가 있었다. 그 상태로 끙끙대며 자고 있었다. 오노는 놀라 그를 깨우려다 자신도 베란다에서 얼어 죽을 각오로 자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뻗었던 손을 도로 가져왔다. 분명히 무슨 일이 있었을 거라고 다만 생각할 뿐이었다. 오노도 창문을 열고 찬 바닥에 몸을 뉘었다. 오늘은 조금 덜 추웠다.

  눈을 감고 아침부터 지금까지 일어난 극적인 상황들을 모두 곱씹었다. 사람은 둘로 늘었고 말소리도 두 배로 많아졌다. 밥도 두 배로 해야 했고 설거지도 두 배였다. 하지만 싫지 않았다. 이상한 욕망에 끌려 사쿠라이를 데려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조금은 더 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옆에서 사쿠라이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눈을 뜨자 이미 아주 가까이로 다가와있었다.

  “같이 자자.”

  “여기 추워.”

  “춥다면서 형은 왜 여기서 자.”

  “난 혼자 어두운 데 있는 거 싫어. 조금이라도 더 밝은 게 나아.”

  “오늘부턴 둘이잖아. 들어가서 자자.”

  사쿠라이의 말에 오노의 눈이 퍼뜩 떠졌다. 그렇게 많고 많은 생각을 했으면서도 그건 눈치채지 못했다. 습관대로 차갑게 식힐 필요가 없었다. 벌떡 일어나 사쿠라이의 손을 잡았다. 그리곤 방으로 향했다. 바닥에 깔린 이불에 나란히 누웠다. 굳어있던 몸이 따듯한 공기에 사악 풀렸다. 약간은 저릿저릿하게 느껴지는 그 감각에 온몸을 맡기고 눈을 감는데 사쿠라이의 팔이 자신의 가슴팍에 올라온 것이 느껴졌다. 이윽고 말소리도 들렸다.

  “형, 정말 이상하게 들릴 것 같긴 한데, 나 형이 좋아.”

  “나도.”

  숨김없이 대답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혼자 남겨진 기분 안 들게 해줄게.”

  사쿠라이의 입술이 오노의 것 위로 포개졌다. 그의 입술에 가득 담겨있던 온기가 오노의 차갑게 식은 입술로 옮겨갔다. 그리곤 그대로 입술이 벌어졌다. 그 뒤로는 본능이 시키는대로 따라갔다. 서로의 몸이 맞닿으면서 체온을 나누고 체취를 섞었다. 고독함이라곤 한참 먼 어딘가로 사라지고 그 공간에는 오로지 둘만이 존재했다. 혼자만의 공간일 때는 그렇게도 광활하고 공허하고 숨이 턱턱 막히게 만드는 심연이었는데 둘이 되자 아늑하기까지 했다.

  한참 비벼지던 입술이 떼어지고 서서히 두눈이 마주했을 때, 오노는 물었다.

  “아까 저 박스엔 왜 들어간 거야?”

  “원랜 저 정도 사이즈의 박스에서 잤어. 저것도 자려고 꺼낸 거고. 실험실에선 이상하게 구석에다가 몸을 구겨야 잠이 잘 왔거든. 근데 오늘은 그러기 싫더라. 이유는 나도 모르겠는데 형도 이유 없이 날 구해줬으니까 나도 이유없이 행동할까 하고. 이젠 서로가 서로의 이유가 되면 되겠다. 아주 외롭고, 슬프고, 괴로운 날이 또 오더라도 나를 꼭 그럼에도 살아야 하는 이유에 넣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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