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
바르
레퀴엠
우중충한 하루였다. 애매하게 내리는 비는 하루종일 그칠 줄 몰랐다. 거기다 장의사를 찾는 이들이 하필 오늘따라 더 많아서 내부 분위기가 축축 쳐졌다.
“다들 퇴근해. 난 마감하고 갈게. 수고들 했어.”
낡아빠진 간판을 건 업장의 주인인 오노 사토시가 직원들과 마지막 업무를 마치고 말했다. 직업이라곤 해도 매일 죽은 사람만 몇이나 보고 있자니 기가 빨릴 지경이었는데 오늘은 비까지 을씨년스럽게 오는 통에 다들 기운이 더 빠져있었다. 직원이라 해봐야 두 명뿐이었지만 대신 오노가 한 명 한 명 꼼꼼하게 챙겨주고 있었다. 업장이 작아서도 있었지만 워낙 손님 대응 솜씨나 기술이 좋았기 때문에 오노와 두 명 정도면 일손은 충분했다. 오노 사토시는 이 근방에서 가장 저명한 장의사였다. 장의사 업계에서 유명하다던가 인기있다던가, 그런 차이가 어떻게 있을 수 있나 그 역시도 아직은 이해할 수 없단 눈치였지만 마을 사람들은 확실히 장의업은 오노에게 맡긴다는 이미지가 있었다. 이유도 확실했다. 그의 한결같은 표정, 목소리, 그리고 흐트러지지 않는 견고한 평정심이었다.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난다면 냉랭해 보일지도 모르는 표정이었지만 죽은 사람을 보내주기 위해 업장을 찾은 사람들은 오히려 그의 언제나 온화한 듯 보이는 얼굴이 안정감을 준다고 했다.
죽은 자와 마주해도 오노의 표정이 크게 움직이는 일은 없었다. 시신이 아무리 훼손되어있어도 그는 평소처럼 유가족들을 안정시키고 정해진 매뉴얼을 차례로 밟을 뿐이었다. 사인이 의심되더라도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직원들은 오노 몰래 그가 로봇 같다고 말을 나누는 듯 했지만, 손님들은 그의 그런 모습을 마음에 들어했기에 찾아오는 사람의 수는 날로 늘고 있었다. 그러나, 비즈니스적으로 완벽해 보이는 그의 온화하고 일관적인 얼굴과 목소리는 그리 좋게 나온 것은 아니었다. 되려 그의 인생이 여태 얼마나 고달팠는지 보여주는 지표라 할 수 있었다. 오노는 같은 얼굴로 24시간을 물 흐르듯 보냈고 눈을 감아 그 물결 속으로 몸을 내던졌다. 눈을 뜨면 또 다른 아침, 그런 건 노래 가사에나 나오는 거라고 생각했다.
“오노 사토시 38세, 직업….”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잠에서 퍼뜩 깼다. 급히 뜬 눈 앞에는 새까만 옷을 입은 사내가 서있었다. 중년같지도 않았고 어려보이지도 않았다. 딱 자신과 비슷한 나이로 보였다. 차려입은 겉모습에 정갈한 흑발이었고 수려하지만 어딘가 차가워보이는 얼굴이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까맣고 수상한 사람이 간밤에 자신의 침실에 들어와 당당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에 놀랐겠지만 이번에도 오노의 얼굴에는 미동조차 없었다. 죽은 자들의 장례를 수도 없이 본 탓이었을까. 오노는 단번에 자기 앞에 서있는 그가 사신임을 눈치챘다. 물흐르듯 지내던 인생의 물결에 퍽 휩쓸리는 기분이었다.
“곧 내가 죽을 모양인가보지.”
오노의 단도직입적인 말에 적잖이 당황한 사신이 되물었다.
“죽을 때가 되어 사신이 보이는 건 그렇다 치고, 뭐가 그리 덤덤해? 자살 결말은 아닌 거 같은데.”
“그냥 감이지. 게다가 그쪽 얼굴, 내가 가장 사랑했던 모습이기도 하고.”
사신의 얼굴은 영락없는 니노미야 카즈나리의 모습이었다. 자신에게도 헌신적이지 못한 오노가 가히 온 인생을 바쳐 사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노에게 니노미야는 곧 인생의 전부였고 그는 3년 전 인생을 잃었다.
“사인이 뭔지나 알려줘.”
“그건 안돼. 사신법 위반이야.”
“죽는 마당에 별 게 다 위법이네.”
“그나저나 놀랐어. 사신을 보고도 태평하기에 모자라 불평까지 늘어놓는 인간이 있을 거라곤 생각 못했거든.”
사신, 니노미야 카즈나리의 눈동자가 햇빛을 밭아 호박처럼 반짝였다. 무언가 새로운 흥밋거리를 찾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오노는 그의 장난스러운 말에도 여전히 시큰둥한 얼굴이었다. 마음에 한 드는 것이 하나 있어서였는데, 소문 그대로 가장 사랑한 자의 얼굴이라는 것이었다. 오노는 3년 전 니노미야를 잃고 장의사로 전직하면서 모든 걸 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매일 오는 시신들을 정성스레 천으로 감싸면서 그날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죽을 날이 다 되었다고 찾아온 사신의 얼굴이 니노미야라니, 심장이 묵직하게 아려오는 것이었다. 제 손으로 벌벌 떨며 천을 감고 저 멀리로 보내주었던 그 날의 기억들이 억누르고 있던 세월을 한 겹씩 뚫고 나오려 했다.
“내가 이 얼굴이라 불만이야? 그러진 마, 나 이 얼굴 마음에 들었다고.”
“농담할 기분 아냐. 어디서 듣자 하니 사신도 전생엔 인간이었다는데, 그럼 이름 정돈 있겠지.”
오노가 잔뜩 찌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이름이 뭐야, 당신. 니노미야라던지 그런 얘긴 하,”
“니노미야 카즈나리.”
“웃기지 마.”
“진짜야, 등록카드에 적힌 이름이라도 확인해볼래?”
니노미야가 꺼낸 카드에는 버젓이 니노미야 카즈나리라고 적혀있었다. 같은 한자라도 카즈야라고 읽는 경우가 더 많은데 오노를 확인사살 하기라도 하듯 후리가나로 정확하게 카즈나리라고 적혀있었다.
“장난치지 마, 재미없으니까….”
거칠게 말하면서도 목소리는 점점 기어들어갔다. 그날의 악몽이 눈앞까지 다가온 것만 같았다.
“인사하러 온 거야. 너의 마지막을 책임지려고.”
거짓말이었다.
“참 로맨틱하고 그로테스크한 결말이네.”
“이렇게 다시 만나게 해서 미안.”
거짓말이었다.
“미안하지 말랬지.”
그 말을 뱉자마자 심장이 세게 아려오면서 오노가 잊으려 안간힘을 썼던 그날의 장면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숨이 턱턱 막히고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니노미야의 얼굴을 보는 것조차 괴로웠다. 아침햇살을 받아 주황빛으로 화사하게 빛나는 눈동자를 보자 오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자신을 휩쓸었던 물결이 그대로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가는 것 같았다. 하루하루 감흠없이 살던 인생이 한 번에 밀려들어 왔다.
흔들리는 오노의 모습에 니노미야는 덜컥 인간일 때를 다 기억하는 척 했지만 그에겐 기억이 단 한 조각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가 오노를 사랑했다는 것도, 절망적인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도, 그 어느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인사하러 왔다는 것도, 미안하다는 것도 다 거짓말이었다. 자신에게 매달리는 모습에 조금의 욕심을 느낀 것뿐이었다. 그가 아는 것이라곤 자신이 자살한 인간이어서 사신으로 임명되었다는 것, 그리고 죽음 특이사항에 애인 단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는 것, 딱 두 가지였다. 사신을 수소문하고 또 해서 특이사항의 ‘애인’이 장의사인 오노 사토시였다는 것만 알아낸 참이었다. 언젠가 밝혀지리라 생각하면서도 짓궂은 장난을 그만두지 못한 자신의 죽음을 알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여 그의 침대에 걸터앉았다.
“오늘 당장 죽어도 여한 없어?”
“여한? 난 3년 전부터 그딴 거 안 키웠어.”
아직 눈물 자국이 선명한 오노가 숨을 고르며 힘겹게 목소리를 꺼냈다.
“참 특이한 사람이네. 누구든 죽음 앞에선 나약해지기 마련인데 그런 말을 스스럼없이 하고.”
“나 같은 사람 한두 해 보냐.”
오노는 이미 완전히 그가 인간 니노미야 카즈나리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럴수록 니노미야는 조금 더 욕심이 났고 오노에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대기자 명부에서 완전히 오노의 이름을 지우고는 집을 떠났다. 아무것도 모르는 오노는 다음날 자정이 넘어서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에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이 지나도 목숨을 위협하는 사고라던지 그런 건 단 하나도 없었다. 곧 죽을 목숨이라고 사신이 찾아오기까지 했는데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니 더 신경 쓰였다. 이러다가 돌연사하는 건 아닌지, 일관성 있던 그의 표정이 되려 별것도 아닌 궁금증에 굳었다 풀어지길 반복했다. 업장의 직원들도 어느새 눈치챘는지 “사장님, 요즘 무슨 일 있으세요?” 하고 묻는가 하면 찾아온 손님들이 음료수 두어 개를 쥐어주고 가기도 했다. 그렇게 뒤숭숭한 마음으로 5일 정도 지내자 다시금 침대 앞에 애증의 얼굴이 나타났다. 피곤이 쌓여 얼른 잠을 청하려던 차에 니노미야를 발견한 오노는 짜증이 섞인 말투로 물었다.
“나 죽는다며 이게 뭐야.”
“내가 좀 욕심이 나서 말이야.”
“무슨 말이야?”
“그쪽이 좋아졌다고.”
“사신이 지금 인간이 좋아졌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거야?”
“당신을 사망자 명단에서 지운 날부터 모든 걸 각오했으니까.”
예상과 다르게 진지한 대답에 당황스러웠다. 제대로 알아들은 게 맞나 의심스러웠지만 오노는 일단 들어나보자 하는 얼굴로 니노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그래서, 사귀자고. 옛날처럼 다시 한번 해보자고.”
인정하긴 싫었지만 마음은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좀 전까지 튀어나올 듯 세차게 요동치던 심장도 금세 진정되었다. 이걸 기회로 받아들여야 할지 함정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눈앞에 존재하는 사신의 얼굴은 영락없는 니노미야였고 이름과 존재마저도 완벽한 하나였다. 괴로운 기억으로 마음 한 켠에 숨겨둔 그와 정확히 같은 존재였다. 운명을 조금만 거스른다면 3년 동안 지우지 못하고 휩싸여있던 아픈 이별에서 벗어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마저 부풀었다.
“그래, 하자.”
오노의 이성이 눈빛에서 서서히 멀어졌다. 그런 그를 보는 니노미야의 눈동자는 그걸 흡수하기라도 하듯 반짝였다.
말도 안 되는 것에 동의를 표한 후, 오노의 머릿속은 추억으로 가득 찼다. 그가 죽기 전에 함께 했던 게 뭐더라, 그걸 기억해내느라 애를 썼다. 놀이공원을 갔었나, 집으로 불러 정신이 아득한 새벽을 보냈던가, 기억의 흐름이 고통으로 점철되어 멈춰버린 그 시점 전으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참 오랜만이었다. 오노는 새삼 그와의 행복한 추억이 참 많았구나, 라는 것을 다시 느끼면서 옆에 바짝 붙어 앉은 현재의 니노미야에게 시선을 돌렸다. 처음엔 어이없다고 생각했던 이 상황에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하고 싶은 거 없어?”
“글쎄, 먼저 하자고 하면 난 아무거나 좋은데.”
니노미야가 오노를 지그시 쳐다보며 답했다. 오노 사토시라는 인간은 꽤나 배려심이 깊고 차분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완전히 처음 보는 상대에게 마음이 가득 있는 척을 하는 게 쉽진 않았지만 그런 것 쯤은 그의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사신은 자살로 죽은 사람만 임명받는다는데 자신이 어째서 이런 사람과 연애를 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내던졌는지 지금으로선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노와의 시간은 행복했다. 사신간부위원회에서 징계를 내릴 것도 뻔하고 어쩌면 제명당해 소멸될지도 모를 팔자였지만 그와 함께하면 할수록 그런 건 어찌 되어도 좋다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이었다. 이런 게 전생의 자신이 좋아했던 오노의 매력일까, 니노미야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가 한 걸음 한 걸음 오노에게 빠져들수록 오노도 그와 진지한 관계로 발전하는 듯 보였지만 실상은 두 걸음씩 멀어지는 것과도 같았다. 일관적인 얼굴로 외로운 세월을 보내던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지고 입엔 농담이 시도 때도 없이 걸려있었지만 그건 전부 다 그가 현재의 니노미야가 아닌 과거의 니노미야를 생각하면서 이 관계에 임했기 때문이었다. 현재의 그는 인간 니노미야보다 훨씬 능글맞고 장난기 있고 아슬아슬하게 선을 건드리되 절대 넘지는 않는 성격이었다. 그에 반해 인간은 아주 진중하고 깊은 생각에 잠겨있을 때가 많았다. 남을 자신보다 먼저 생각했고 눈치도 빨라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곧잘 친해지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예의를 깍듯이 차렸다. 오노는 분명하게 이 차이를 알고 있으면서도 눈을 가린 듯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의 강건한 기억과 믿음이 전달된 감각을 내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점점 둘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현재의 니노미야는 과거를 상상하면서 현재의 오노에게 빠지고, 현재의 오노는 과거를 곱씹으며 과거의 니노미야에게 빠지고 있었다. 그때 그렇게 저 하늘의 별이 되지 않았다면 분명 이런 삶을 살았겠지, 하는 행복한 상상을 실현시킬 좋은 기회나 다름없었다. 오노는 그 때 한 무모한 동의가 절대 후회되지 않았다. 언제 추잡하고 괴로운 죽음을 맞이한다고 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둘이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본다고 착각하며 너무 멀리 가버린 것을 깨달은 것은 오노가 점점 “니노미야라면 이런 걸 좋아했겠지.”라며 기억을 더듬어 맞춰주려는 강박에 빠진 때였다.
“니노는 신 걸 싫어했으니까…, 우리 디저트 먹으러 가자. 이 앞에 맛있는 티라미수 파는 데 있어.”
오노는 별 생각없이 뱉은 말이었지만 이런 류의 말들이 점점 많아지자 니노미야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이고 있었다. 소멸을 각오하고 이 관계를 이어나가기엔 이 속에 자신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신 걸 잘 먹든 말든 그런 건 아무 상관 없었다. 지금의 자신을 바라봐주길 바란다는 생각이 자꾸만 속에서 메아리처럼 울렸고 그걸 인정하기 싫어 더 괴로웠다. 그리고 이 이상 속였다간 궁금증이 해결되긴커녕 상처만 한가득 받을 것 같았다. 결국 오노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당신한테 니노미야란 뭐야?”
니노미야가 다시 오노를 당신으로 불렀으나 오노는 아무런 자각이 없었다.
“진중하고 배려 잘하고 그래서 나보다 남을 소중히 하는 모습이 안쓰럽고, 그래서 더 잘해주고 싶고 미안한 존재.”
그가 대답을 끝냄과 동시에 지금 여기에 자신은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 몇 달 동안 함께 해온 자신은 남아있지 않고 오노의 기억 속에 아련한 존재로 남아있던 인간 니노미야만이 확실한 존재로 변해있었다. 현재의 자신은 미안할 짓을 하지도 않았고 배려하지도 않았고 진중하기보단 장난을 많이 치는 편이라는 것을 뻔히 하는 니노미야는 홧김에 덜컥 화를 냈다.
“나는, 그럼 난 어딨는데?”
“무슨 소리야.”
“지금 얘기한 건 온통 기억 속에 있던 니노미야뿐이잖아. 나는 진지하지도 않고 이기적이고 미안할 짓은 한 적도 없어. 근데, 안쓰럽고 미안해?”
“지금의 네가 안 그러면 어때? 난 옛날처럼 다시 한번 해보자는 네 말대로 하는 중인데.”
오노의 너무 차분한 대답에 오히려 더 화가 났다. 인간 니노미야에게 그를 뺏기고 있는 듯한 기분밖에 남지 않았다.
“난 그쪽 사랑해. 아주 진지하게. 사신으로라도 살고있는 이 영혼이 협회에서 제명당해서 소멸될지도 모른다는 리스크를 안고서라도 잃고 싶지 않았어. 비록 처음 시작은 호기심이었지만. 여태 한 번도 명단에서 오노 사토시란 이름을 고민 없이 지운 거에 대해 후회한 적 없었다고. 근데 지금 날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어?”
“무슨 소릴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미안한데. 넌 네 입으로 네가 내 마지막을 책임지겠다고 했고, 난 그때 너한테 못 해준 것들을 전부 다 해주고 떠나려고 애쓰는 중이야. 도대체 뭐가 문제야?”
그의 논리에 니노미야는 자신의 꾀에 스스로 걸려 넘어졌다는 것을 자각했다. 조금이라도 더 이 행복한 시간을 끌고 갔어야 했는데 심장을 강하게 때린 시기심에 무너져버린 것이다. 무엇보다도 기억 하나 남지 않은 과거의 자신에게 지고 있다는 생각이 그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사실대로 말해줄까? 난 기억 같은 거 없어. 그딴거 사신이 될 때 이미 모두 압수 당했으니까. 어딘가 기록으로 남아있을지 아니면 완전히 버려졌을지 그것조차도 난 몰라. 내가 아는 거라곤 내가 자살을 했기 때문에 사신이 되었다는 거고 특이사항란에 그쪽의 이름이 애인이라고 적혀있었다는 것뿐이야. 그러니까 지금 나는 내 덫에 걸린 거지. 내가 모르는 전생의 내가 그쪽을 그렇게 사랑했다는데 도대체 왜 내가 자살까지 하게 된 건지, 그게 너무 궁금했거든. 그래서 직접 알아보려고 윗선에 졸라서 배정받고 와봤더니 한눈에 반했달까? 보자마자 아, 이래서 그때의 내가 당신은 사랑했겠거니, 하고 말이야. 그런 거였어, 시작은. 된통 당해보라거나 그런 괘씸한 마음가짐은 아니었으니 너무 미워하진 마. 시작은 그렇게 소소했는데 그쪽이 자꾸 과거 얘기만 하고 나는 안 봐주니까 언제부턴가 인간 니노미야 카즈나리에게 질투가 좀 나서 말이야. 이젠 그게 나라는 생각마저 못하겠더라고.”
니노미야가 속사포로 뱉은 말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어서 한동안 오노는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죄의식 같은 건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저 속은 기분. 최선을 다하려던 노력이 쓸모없어지는 이 무기력한 감각이 여태 쌓아오던 행복함을 삽시간에 갉아먹었다. 절망감이 몰려왔고 그것은 꽤나 괴로웠다. 한참을 굳어버린 표정으로 테이블 무늬만 쳐다보던 오노가 아주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가 기억따위 다 잃어버렸다는 거 이미 알아. 내가 일부러 틀린 정보를 말해도 넌 아무런 반응이 없었거든. 그래도 난 변했거니 하고 말았는데, 날 가지도 노니까 재밌었니? 혼자 과거의 너와 의미없는 싸움을 하면서 나한테 거짓된 행복감만 가득 채워주니 좋았니? 이걸로 넌 확실히 버림받았어. 지금의 난 너 같은 거 받아줄 생각 추호도 없어. 나한테 넌 이제 니노미야 카즈나리가 아니니까. 네가 왜 죽었는지 알려줄까? 그거면 돼?”
오노가 감정이 싹 빠진 눈으로 니노미야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처음부터 장의사인 건 아니었어. 넌 모르겠지만. 난 미대생이었고 게임 프로그래밍을 전공한 니노랑 같이 작업을 하는 사이였어. 함께 회사를 차릴 생각을 하면서 먼저 졸업한 내가 니노가 졸업하길 기다릴 즈음에 큰 쓰나미가 왔고 마을은 쑥대밭이 됐어. 사람들은 혼비백산이 돼서 친척 집으로 피난을 갔고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대부분 죽었고. 우리 마을과 그 옆 동네, 그 주변 동네까지 전부 다 인류가 문명을 세우기 전으로 돌아간 것 마냥 폐허가 됐고 그때 이런 기분을 처음 느꼈던 거 같다. 허무함, 지금 모든 걸 알아버리고 나서 내 노력이 물거품이 된 거 같은 이 감각, 그때랑 똑같아. 하지만 넌 그때와 달라, 너라고 할 수도 없겠지, 완전히 분리되어 다른 존재가 되었으니까. 내가 사랑하던 니노미야는 나 대신 죽었어. 사람들의 정신이 망가진 틈을 타 자리를 잡아버린 사이비 종교의 손에. 20대에 무직인 내가 적임자로 지목받았다는 통지서가 오자마자 니노는 그 자리에서 마을 가장 가운데에 있는 건물로 달려가서 나 대신 자기가 제물이 되겠다고 소리쳤대. 그리곤 교주가 건넨 칼로 스스로 목을 찌르고 죽었대. 사토시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태어났다면서, 죽으면 안된다고 말하면서. 그것마저도 나중에 그걸 목격한 할아버님에게 들었지만. 내가 왜 안쓰러워하고 괴로워하는 감정에서 못 벗어나는지 알아? 난 이 무력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결말을 맞아야만 하는 감각이 죽도록 싫어. 난 한 사람의 목숨을 희생해서 부지할 만한 목숨값 그딴 비싼 것도 아닌데 큰 값 내고 살게된 게 너무 버거워서 힘들게 살아온 거야. 이젠 그것도 피곤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 여기서 당장 차에 치이게 하든 건물 간판에 깔리게 하든 알아서 해. 니노가 죽고 나서 어떻게든 남은 생을 그를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던 나를 건드렸으니 네 말대로 날 책임져봐. 전에 말했듯이 난 인생에 여한 같은 거 안 키우거든.”
오노의 눈빛에 광기가 어려있었다. 살고싶다는 마음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고 눈동자는 단단하게 빛을 내며 니노미야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내 목숨은 사신을 휘어잡아 시기를 느끼게 할 만큼 가치있는 것이었나?”
물음을 던지며 오노의 눈동자에선 빛이 사라졌다. 무서우리만치 깊게 파인 듯 어두운 눈이 니노미야를 응시했다. 공허한 눈으로 쳐다보던 오노는 돌연 입꼬리를 슥 올리며 말했다.
“다시 이 미칠 듯한 무력함과 나약함을 느끼게 해줘서 고마워. 이게 니노가 나에게 쥐어준 목숨의 무게라면 받아들이는 게 맞겠지. 너의 소멸을 고대할게. 시기심은 원래 죄악이거든.”
“인생은 참 허무해,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