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
웅앵
“아 만지지 말라니까.”
오늘로 이 소리만 열 번째 듣는다. 안 그래도 예민한 허벅지에 손을 대면 툭툭 잘도 튀어나오는 반응이 재밌어서 저 소리 듣고도 질리질 않았다. 니노미야는 딴청 피우는 고양이처럼 눈알을 굴렸다. 오노는 백번 말해봐야 안 듣는 사람이 니노미야라는걸 알고 있어서 길게 말 안했다.
그러고 몇 분간을 가만히 있더니 니노미야의 손이 슬금슬금 허벅지 쪽으로 이동하는게 눈에 들어왔다. 오노가 따끔하게 한 마디 툭 내뱉었다.
“한 번만 더 만지면 대기실에서 쫓아낼거야.”
“여기 전세냈냐?”
“넌 내 허벅지 전세내서 만지냐?”
“돈 내면 만져도 된단 뜻이지?”
그러고 슬그머니 눈치를 보는 니노미야를 밀어내고 오노가 쿠션으로 팡팡 때렸다. 말이나 못하면. 잔뜩 부풀어오른 볼이 불만에 가득 차 보여서 니노미야가 뒤에서 허리를 끌어안고 앉았다.
다른데는 다 만지게 해주면서, 유독 허벅지는 약해서 안된다니. 진짜 성감대라 느끼는건지 그냥 간지럼이 심한건지는 모르겠지만 니노미야가 보기엔 전자였다. 남자 중에도 잘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데 그게 딱 오노겠거니 싶었다. 더 만져보면 알거 같은데.
“만지지 말랬지!”
철썩 소리가 나게 등짝을 맞은 니노미야가 결국 대기실에서 쫓겨났다. 그 후 점심식사를 사 온 매니저에 의해 발견되어서 다시 들어가기는 했지만.
※
“젠장, 내가 뭘 했다고. 이게 이렇게까지 혼날 일이야?”
“어.”
투덜거리면서 소바를 먹던 니노미야가 충격먹은 얼굴로 사쿠라이를 돌아봤다. 솔직히 사쿠라이라면 자기편을 들어줄거라고 생각해서 얘기를 꺼낸거였는데. 이렇게 딱 잘라 절대 내가 잘못했다고 주장한다고?
“형이 싫다고 그랬다며.”
“그건 늘 그랬잖아.”
솔직히 하도 이러고 놀아서, 장난과 진심의 경계가 구분이 가지않는 시점이 찾아오자 하지 말라는 말이 별 대수롭지 않게 들렸다.
그건 오노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고 지금까지 그 선을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며 지내올 수 있었다. 그래서 그냥, 평소랑 같은 그런건줄 알았는데.
“글쎄 뭐랄까, 너 요새 스킨쉽이 심해진건 사실이야.”
“그건 그러고 싶어서고.”
“왜? 진심이기라도 해?”
순간 속으로 욱했다. 스스로도 왜 그런 감정이 들었는지 이해는 가지 않았지만 굳이 사쿠라이에게 본심을 말하고 싶진 않았다.
“....알잖아. 항상 비즈니스고 장난이었다니까.”
사쿠라이는 좀 찝찝한 듯한 얼굴이었지만 더 물어보지 않았다. 사실 물어봤어도 답해줄 생각은 없었지만. 니노미야가 맥주를 홀짝였다. 혀에 맴도는 술의 맛이 꽤나 알싸했다.
‘진심이라.’
사쿠라이가 물은 진심은, 아마도 연애감정 그런 류겠지. 따지고보면 니노미야는 호모포비아는 아니었으나 오노 사토시는 연애대상으로 비친 적이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남들과 같은 감정으로 바라본 적도 없었다.
니노미야는 자신이 오노에게 느끼는 이 감정이 뭐라고 확실하게 정의를 내릴 수는 없어도 평범한 감정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와 성적인 행위 따위를 하고싶다는걸 일반적인 시선으로 보기는 어려우니까.
그래서, 데뷔한 후 지금까지도. 이 감정에 제대로 된 이름 하나 붙이지 못해서 이기적인 방식으로 오노를 곁에 붙들어두었다.
언젠가는 마무리를 지어야 할 관계라는걸 알면서도 장난감 하나 놓지 못하는 어린아이처럼 구는 쪽이 편해서였다.
※
니노미야는 술자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딱히 술이 싫어서는 아니고, 술자리 특유의 분위기가 싫어서 그랬다. 고기가 익으면서 훅 퍼지는 열기와 실내에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면서 공기가 탁하게 변질되는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끄러운데는 딱 질색이었다.
특히나 오노와 조금 싸우고 얼마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둘이 공동 출연한 드라마 회식이라니, 이보다 최악인 경우가 또 있을까.
“나오지말걸 그랬나....”
“드라마 회식인데 어떻게 안 나와.”
너랑 내가 주연이잖아. 오노의 말은 틀린거 하나 없었지만 대답은 안했다. 껄끄러운 것도 있어서였다. 그래도 니노미야는 진심으로, 오노가 아니었으면 회식자리를 들어오자마자 바로 발걸음을 돌렸을거라고 장담했다. 이 사람이 그나마 있으니까 버티는거지 이런 분위기는 절대 사절이었다.
국민 아이돌로서의 위신이고 나발이고......
품 안에 넣어둔 담배가 몹시 땡기는걸 참고 고기만 몇 점 집어먹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오노의 허리를 끌어안고 싶어서 손이 근질거렸다.
그때 뒤에서 호탕한 웃음소릴 내며 걸어오던 사람이 아는 체를 하며 말을 걸어왔다. 안면이 있다 싶었는데 평소 오노랑 작품을 찍고 싶다고 난리를 치던 야마시타 PD였다.
“아니 이게 누구야? 우리도 영화 쪽으로 유명인사들만 모아서 술 마시고 있었는데. 마침 옆에가 오노 씨랑 니노미야 씨 드라마 회식자리였네.”
“하하, 오랜만에 뵙네요.”
“아라시가 말야, 항상 스케줄이 가득 차 있으니 영 섭외가 안된단 말이지. 꼭 좀 한번 같이 작품 찍어보고 싶은데.”
전부 다 어마어마한 물건이니까. 야마시타가 끌끌 웃으며 오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니노미야는 야마시타의 팔을 당장 분질러버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젓가락으로 애꿎은 계란찜만 푹푹 쑤셨다. 저 새끼는 왜 허락도 없이 건드리고 지랄이야.
“참, 오노씨 키시다라고 무대 연출가 알아요?”
“키시다 연출가요?”
낯익은 이름을 들은 듯 오노가 눈을 반짝 빛냈다. 평소 콘서트를 위해 무대 연출을 공부하는 마츠모토와 해외로도 돌아다니고 그랬으니 흥미로울만 했다. 이해는 해도 같잖다고 생각하는건 여전했지만.
“엔도 감독님이 그 사람하고 연줄이 닿는 모양이던데. 이번에 오노 씨랑 작품 찍는다고 하니까 공연 보러 와줬으면 좋겠다고 그랬다더라고요.”
“정말요? 그분이 베를린에서 한 공연도 정말 잘 봤는데....”
“감독님이 자리 주선 해줄테니까 같이 얘기나 좀 해보자던데.”
요약하자면, 우리 술 마시는데 합석할 생각 없냐는 소리였다. 공연은 핑계고 그냥 순진한 사람 꼬드겨서 가지고 노는게 즐거울 뿐이겠지. 시커먼 속내가 한눈에 들어와서 아주 기분이 더러웠다.
니노미야가 소리나게 맥주잔을 내려놓고 마냥 사랑스러운 얼굴로 야마시타를 돌아보았다.
“죄송하지만 PD님. 드라마 회식 자리에서 주인공이 빠지면 곤란하거든요.”
더욱이 당신같은 노인네들한테 장난감 마냥 넘겨줄 생각도 없고. 뒷말은 삼켰다. 정말이지 짜증나는 상황이었다.
누구 맘대로 이 사람을 데려가겠다는건지. 데려가고 또 무슨 짓거리를 할지 가늠이 안됐다. 그냥 다 집어치우고 오노를 끌고 밖으로 나가고 싶지만 당사자랑 싸운 뒤라 그것도 안되고. 결국 대외적인 명분을 내세우는게 고작이었다.
“잠깐이면 되잖나, 잠깐이면.”
“이런 자리에서 주연 배우가 술 마시려고 자리를 비운다는건 듣도 보도 못한 일이라서요. 아, 아니면 제가 잘 모르고 있었나요? PD님은 이쪽 업계 전문이시니 가르쳐주시면 좋겠는데.”
물 흐르듯 쏟아져온 말에 PD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술을 뻐끔거렸다. 솔직히 잠깐 인사하는 정도면 괜찮겠지만, 지금 PD가 속으로 궁리하던건 같이 술 마시면서 잡담이나 나누자는 거였을 것이다.
주연 배우 하나가 홀랑 빠져서 다른 사람들하고 술을 마시러 간다니, 어느 나라 예의야. 이게 애들 소꿉장난도 아니고.
“...됐어, 니노. 잠깐이면 된다잖아. 화장실 간다 치고 갔다오면 되지.”
“뭐?”
오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순간 제 귀를 의심했다.
이런 상황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이 스스로 불 속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행동했다. 도대체 왜, 라고 생각하다가 생각이 자존심인가? 라는 의문에서 멈춰섰다.
얼마전에 싸운 것 때문에 지금 이러는거야 정말? 물어볼 틈도 없이 오노는 야마시타와 함께 저 멀리 구석진 자리로 이동했다. 니노미야는 어안이 벙벙해서 오노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시발, 꼭 이런데서 자존심 세우고 앉아있지.’
야마시타에게 오노를 뺏겼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스스로 자처한 상황이었지만 이 업계에서 질 안좋기로 유명한 새끼의 옆에 굳이 가서 앉을 정도로 자신한테 화가 나 있던건지. 그냥 사소한 다툼이겠거니 가볍게 생각한 자신의 잘못이었다.
하기야 근래 방송에서도 자신에게 말을 거는 법이 없었으니, 좀 오래갈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어도... 이런 사태를 초래할 줄 알았다면 진즉에 사과할걸 싶어졌다.
니노미야가 깊게 한숨을 내쉬며 테이블에 이마를 들이박았다. 건너편에 앉아있던 막내 스탭이 깜짝 놀라 어리둥절한 얼굴로 왜 그러냐 물었다. 왜일거같냐. 저 여우너구리 같은 영감님 때문이지. 니노미야가 뒤편으로 시선을 흘끔 보냈다.
감독이 건네는 술잔을 받아드는 오노의 퐁실퐁실한 머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뭐가 문제야.’
다른 사람들도 스킨쉽만큼은 허락 안해준걸, 나한테는 해줬잖아. 술잔을 손톱으로 힘없이 툭툭 건드렸다. 자신만큼은 오노의 선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 있는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막상 오노의 태도가 아직도 그게 아니라고 하는거 같아서 괜한 변덕이라고 생각했고, 더 만지고 싶어서 안달나고 그랬던건데. 뭐가 문제여서 자꾸 선 긋고 멀어지는건지 모르겠다. 옆에 놓인 맥주를 한 컵 그대로 쭉 원샷했다. 텅 빈 옆자리가 유난히 허전하게 느껴졌다.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건 순식간이었다.
※
“정말이지... 감독님 입담 하나는 끝내주신다니까.”
“하하, 뭘 띄워주고 그러나...”
술잔과 함께 거친 입담들이 테이블 위를 오고 갔다. 오노는 어색하게 웃으며 맞장구쳐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이런 자리는 몇 번을 앉아있어도 어색하고 적응하기 어려웠다.
달리 할 말도 없어서 맥주잔을 매만지며 애써 시간을 흘려보냈다. 야마시타가 금방 보내줄 거란 생각은 안했지만 니노미 야 때문에 자존심이 상해서 온 자리였다. 불편하다고 돌아가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무엇보다 키시다 연출가와의 만남은 귀한 자리였기에 마츠모토에게도 소개시켜주면 좋을 것 같아서 더 버티기로 했다.
입만 꾹 다물고 가만히 앉아있으려니 문득 감독이 입을 열었다.
“아, 그... 오노 씨를 너무 오래 방치해뒀지 우리가? 미안하게 됐네. 키시다 씨 얘기 해준다는게 그만....”
“아뇨, 괜찮습니다.”
“아무튼 그 사람이 말야. 같이 술도 마시고 하면 참 좋겠다더라고. 다음 주에 일본에서 공연 하니까.”
“그건 몰랐네요....”
좋아하는 무대 연출가 얘기를 듣고 있어도 탐탁찮았다. 기분 더럽게 만드는 데에는 재주가 넘치는 노인네들 사이에서 달가울 일이 뭐가 있겠느냐만은.
빨리 연출가 얘기만 듣고 싹 사라질 예정이었는데 감독이 말을 질질 끌어서 도저히 얘기가 끊길 기미를 안보였다.
“뭐, 공연할 때에 시간은 날지 모르겠지만 자리는 내가 주선해 줄게. 만나볼래?”
“저야 감사할 일이죠.”
사실 그렇게 감사하진 않았다. 연줄이야 닿은 사람이 널리고 널렸을테니 굳이 이 감독한테 자리를 주선해달라고 하는 것도 싫었다. 다만 공개적인 자리에서 망신을 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오노는 살갑게 웃으며 마냥 좋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펼쳤다.
“아 그 키시다 걔가 참 무대 연출을 잘하더라고. 그래서 오노 씨가 좋아하겠다 싶어서 얘길 꺼내보니 딱 자기도 만나보고 싶다 그러는거야?”
“그...그래요?”
“그래! 잘되지 않았어? 콘서트 영상을 보더니, 막 자기도 성심성의껏 도움을 주겠다고 하더라니까?”
그건 또 의외였다. 자기 얘기를 남하고 했다는 점은 조금 꺼림칙했지만 연출가 쪽에서 선뜻 만나보고 싶다고 말을 꺼내는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키시다는 타인들과 교류하는 일이 적고 방송에도 출연하지 않기로 유명한 연출가라서 더 놀라웠다. 대체 내 얘기를 어떻게 들었길래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는거지? 거기다 도움을 줄 정도라니.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그렇게까지 한다고? 기시감을 느끼며 오노가 맥주를 들이켰다.
그런데 감독이 말을 잇다 말고 손을 매만지며 말꼬리를 흐렸다.
“그... 다 좋은데. 키시다 걔가 좀 워낙 바빠서 말야.... 알지? 요샌 또 악성 파파라치들한테 쫓겨다닌다고 하대?”
“알죠. 물론...”
“그래서 말인데, 음.... 주선할 자리가 평범하진 않고. 남들 몰래 만나야 하거든.”
예를 들면 있잖아. 호텔같은 데라거나... 딱 거기까지 말하는 순간 오노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 불안한 예감이 몰아닥쳤다.
하, 호텔이라고.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야 했는데.
오노가 입술을 꾹 깨물고 몸을 움츠렸다. 어떻게 생각해? 감독이 넌지시 물었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명백하게, 좋지 못한 자리를 말하는 거잖아 지금.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을 가치도 없었다. 머릿 속에서 당장 이 자리에서 벗어나라고 사이렌이 요동치고 있었다.
오노는 술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순간 옆에 앉아있던 야마시타가 강한 악력으로 손목을 붙들었다.
“놓으세요.”
“왜 빼고 그래? 잘 해준다잖아. 응?”
“놓으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미친 노인네들이라고 소문이 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상대가 누구든 상관않고 이런 짓거리를 하고 다녀서였다. 내가 미쳤지. 자존심이고 뭐고, 미친놈들은 피해야 하는건데.
안하던 짓을 해서 그런가. 깊은 후회감이 들었지만 거기까지만 생각하고 말았다. 지금 와서 돌이켜봐야 늦었고, 그냥 자리를 뜨는게 상책이었다. 하지만 야마시타의 악력은 정말 생각 이상으로 강해서 뿌리칠 수도 없었다.
손목을 매만지는 느낌이 징그러워서 벌레가 기어오르는 것 같기도 했다.
목이 메어오는걸 느끼면서 오노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한번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놓으세요.”
“좋다고 따라올 땐 언제고, 이제와서 우린 더럽고 아주 깨끗한 척 고상한 척 한다 이거지?”
그 말에 오노가 어이없어서 야마시타를 돌아보았다. 발상 한번 끔찍했다. 동종업계 사람으로써 상종하기도 싫었다.
“깨끗한 척 한적 없습니다. 단지 전 이런 자리를 원하고 제안을 받아들인 것도 아니고, 단순히 자리를 주선해주신다는 호의에만 따라온거죠.”
“아, 그래? 하지만 이런 자리일지도 모른다는 예상 정도는 하고 왔을거아냐. 세상엔 공짜같은건 원래 없으니까. 아니면 국민 아이돌 씩이나 하면서 세상 일이 그렇게 단순해 보이나보지?”
시발, 그냥 말을 말자. 오노는 이 이상 대화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머리 속에 뭐가 들었는지는 몰라도 이딴 제안을 하면서 세상은 단순한게 아니다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게 어이가 없었다.
신인 배우들에게도 개논리를 펼치면서 더 높은 자리로 가게 해주겠다고 제안을 했을지도 모른다. 미친 새끼들.
욕설이 입술 사이를 비집고 튀어나오려는걸 참으면서 손목을 잡아당겼다.
“그 깨끗하지 못한 일은 당신들끼리나 실컷하세요. 전 생각 없으니까.”
“이러면 재미없지.”
내가 순순히 보내주려고 오노 씨 끌어들인걸로 보여? 야마시타가 붙들었던 손목을 비틀었다. 오노가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자 그의 입가에 조소가 들어찼다.
사람 많은 술집이라도 소리지르면 누구든 듣겠지 싶어 입을 벌리자, 옆에 앉아있던 다른 스탭이 허벅지를 쓸어내렸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아서 오노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하지 마세요!”
“왜? 이 업계에서 오래 성공했으니, 오노 씨도 해봤을거 아냐. 접대해주고 하는거. 안그래?”
개소리 지껄이지마. 자꾸만 몸을 더듬는 손길이 느껴져서 수치스러웠다.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해.
불쾌감과, 모멸감이 들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우드득, 하고 무언가가 뒤틀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 아!!”
“하긴 뭘 해.”
오노가 참고 있던 숨을 터트렸다. 손이 바들바들 떨려왔다. 이를 알아채고는 따스한 손길이 어깨를 붙들어 자신을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귓가에 낯익은 저음의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그렇게 접대해보고 싶으면 당신이 직접 하던가.”
“무, 뭐...!”
“더러운 일 직접 손 대는건 싫으면서 굳이 남을 끌어들이는건 무슨 뻔뻔함인지 모르겠네. 이 이상 손대지 말고 꺼져.”
“아니, 다 아는 사람끼리 왜 이럽니까? 나는 깨끗하다고 체면 세우지 말고...”
“체면?”
니노미야가 피식 웃었다.
“내가 지금 체면 세우는걸로 보여?”
돼지 새끼가 머리에도 지방만 가득찬건지. 필터링 하나없는 발언에 그 자리에서 니노미야의 말을 듣고 있던 모두가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물론 오노도 마찬가지였다.
돼지 새끼? 얘가 지금 미쳤나? 술 냄새가 미친 듯이 올라오는걸 봐서는 거하게 들이마시고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 일이 커지기 전에 중재라도 하려고 몸을 돌리려는데 니노미야의 손이 막아섰다.
“잘 들어, 등신아. 나는 지금 체면 세우는게 아니라.”
“......”
“내거를 건드리지 말라고 하는거야.”
이 손도, 허벅지도, 엉덩이도, 가슴도. 다 내거거든.
당당하게 주장하는 얼척없는 말에 오노가 작게나마 항의했다.
“아니, 전부 내건데....?”
“당신은 조용히 있어. 까짓거 나중에 전세내면 되잖아.”
전세를 대체 어떻게 내려는건데? 오만가지 의문이 머리를 채웠지만 니노미야에게 그런걸 물을 상황은 아니었다. 돼지 새끼에 등신 발언을 듣고 얼굴이 시뻘개진 야마시타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삿대질을 했다.
“이거 아주, 좋게좋게 봐줬더니 기어오른다 이거지? 그따위로 행동해서 잘 될거같아?!”
“왜, 우리 망하게 해보려고? 어디 해보던가.”
난 절대 안 질 자신 있거든. 그렇게 말하고는 오노의 귓불을 깨무는 것까지 아주 총체적 난국이었다. 야 이 미친 새끼야.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도로 내려보내고, 이 처참한 상황을 어떻게 수습하면 좋을지 감이 안 잡혀서 오노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난리를 치고 니노미야가 자리를 피한답시고 오노를 끌고 간 곳은 화장실이었다. 아무도 없는지 확인한 니노미야는 술에 취해서 몇 번 손이 미끄러지다가 문고리를 잠궜다.
“그러니까, 왜 그딴 새끼한테 가서는... 진짜. 내가 막... 무슨 생각으로...”
할 말이 굉장히 많아 보였는데 뇌의 언어능력이 고장이라도 난건지 급속도로 이상한 말만 튀어나왔다. 저런 상태로 야마시타한테 할 말은 용케도 다 했다 참.
“정신 차려. 술에 꼴아가지고.... 그렇게까지 말할건 없었잖아. 개새끼라도 이 판에선 유명인사인데.”
“당신은... 당신은 화나지도 않아?”
눈물이 날 것 같은건 자신이라고 생각했는데, 눈시울이 붉어져 있는 쪽은 니노미야였다. 술에 취해서 빨개진건지 열기에 달아올라 몽롱한 눈동자가 자신을 응시했다. 화도 안나냐니, 그야. 나는게 당연하지만.
당사자보다 더 화가 난 듯한 모습에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네 사회적 위신을 생각했어야 한다는 말이었어.”
“그게 당신한테 뭘 해주는데.”
기껏해야 명예가 뭐라고. 니노미야가 고개를 푹 숙이며 그렇게 말한 것 같았다.
“네가 여태까지 한 노력은 전부 그깟 명예를 위해서 한 거였잖아.”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니노미야는 무너뜨릴 뻔했다. 정말 자신을 위해서 그랬는지 믿을 수가 없었다. 오노는 니노미야가 얼마나 아라시라는 그룹의 멤버로써의 자부심이 뛰어난지 안다. 무엇보다도 그걸 최우선으로 두고, 배우로써의 자신의 입지보다 중요시 여긴다.
자신의 손으로 그걸 망가뜨리길 원하지 않는다는걸 안다. 그런데 이런 일 하나에 이렇게 화를 내고 욕을 내뱉을 이유가 대체 뭐가 있다고.
“맞아. 항상 아라시의 위신을 챙기는데 급급했으니까.”
“그런데 왜 그랬냐고.”
“...내가 아무리 정상까지 오는데 죽을만큼 힘들었어도 사람 하나 죽이면서까지 정상에 계속 서 있고 싶지는 않아.”
그게 하물며, 당신이 아닌 그 누구라고 해도. 화장실 안이 적막으로 가득찼다. 자신의 팔을 붙든 니노미야의 손이 오늘따라 부서질 듯 가냘프게만 보였다.
“...마음 같아선 그냥 자리를 뜨는걸로 끝내려고 했어.”
건조한 목소리였다. 살짝 허탈한 웃음소리가 섞여있었다.
“근데, 당신 옆에 있던 새끼가 허벅지를 만지는걸 보는 순간.”
“........”
“못 참겠더라.”
힘겹게 니노미야가 고개를 들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커다랗게 눈을 뜬 오노의 얼굴이었다.
“싫어하잖아, 그런거.”
오노는 쉽사리 입을 열 수 없었다.
니노미야와 싸웠던 날의 이야기였다. 평소 같았으면 어딜 만지든, 다 똑같이 장난으로 웃어넘겼을 일을 자신이 진심으로 내쳤던 날.
그때 니노미야가 섭섭함을 내비친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오노는 자신이 내친 손을 다시 잡아줄 수가 없었다.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평범하고 장난으로만 가득했던 둘 사이가 어그러질 것 같아서였다.
장난으로 시작해서 어느 순간 그게 진심으로 변모하는건 두려운 일이었다.
소중한 사람을 그런 식으로 잃기 싫어서 그만뒀다. 그게 지금, 니노미야가 스스로 오해하고 상처입은 결과를 만들어버렸다.
“미안해.”
“....”
“네가 날 만져도, 싫지 않았어.”
네가 싫었던게 아니야. 자신보다 살짝 큰 체구를 품에 안았다.
“무서워서... 그랬어. 네가 나한테 하는 행동들에 나만 진심이 된걸까봐.”
오노의 말과 사쿠라이가 했던 말이 겹쳐서 들려왔다. 진심이라기도 하냐는 말. 니노미야는 그때 사쿠라이에게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그냥 얼버무리고 말았던 질문이 다시 되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이 순간 니노미야는 직감했다. 여기서 뭘 대답하든 오노와는 이전의 관계로 되돌아갈 수 없을거라는걸. 자신의 감정이 단순한 장난에서 벗어나버린 그 순간부터 이미 돌이키기엔 늦었을 때였는지도 모른다.
그를 만지고 싶고, 소유하고 싶고, 타인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은 감정.
니노미야는 이제, 이 감정에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여기서. 나도 당신을 사랑한다고 하면...”
“....뭐?”
“미친 소리처럼 들릴까?”
아니, 굳이 그런 짓은 안해도 넌 충분히 미친 놈처럼 보이지만 말야... 오노가 떨떠름한 얼굴로 니노미야를 올려다보았다.
좋아한다고 했으면 조금, 의문이 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사랑한다고 직격탄을 날려버리니 피할 곳도 없다. 얼굴에 열기가 오르는게 절로 느껴졌다. 이런 대답을 원해서 얘기를 꺼낸건 아니었는데, 뭐랄까.
“그럼 그거 진심이었어?”
“뭐가?”
“...야마시타한테. 난 다 네거라고 한거....”
“아.”
그러고보니 그런 말을 했었지. 술에 취해서 사고가 느려진 뇌로 조금 전의 일이 떠올랐다. 뭐 딱히 거짓말은 아닌데. 정말 맨정신으론 못할 발언이었지만 지금 니노미야는 그딴건 몰랐다.
“내거잖아. 당신.”
“내, 내가 왜 네거야...!”
어디선가 보노보노가 헛소리하지 말라고 면박주는 소리가 들리는 기분이었다. 오노가 새빨개져서는 니노미야의 가슴을 퍽퍽 때렸다. 그래봤자 별로 아프지도 않지만.
“참. 전세 내라고 했었지. 그럼 낼게. 그 비용.”
“뭐, 뭘로 내려고? 나 돈 많아.”
“누가 돈으로 내겠대?”
그러면? 순진한 토끼같은 눈망울이 반짝였다. 귀엽긴. 니노미야가 피식 웃고는 벗어나지 못하도록 오노의 허리를 단단히 끌어안았다.
당황해하던 오노가 불길함을 예감한 듯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화장실 문도 잠궜겠다. 전세내기 좋네. 안 그래?”
니노미야는 쓸데없이 이런 순간조차 잘생겨서 할 말을 없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오노가 그 매력적인 미소에 홀려서 잡아먹힌다는 생각에도 거부할 수가 없었다.
제대로 할테니까, 다른데 정신팔지 말고. 악마의 속삭임처럼 달콤한 미성이었다.
목덜미를 콰득 물어뜯으며 뜨거운 혀로 핥아내리자 오노가 간드러지는 듯한 신음소리를 내며 헐떡였다. 츄웁 하고 입술로 빨아들이는 소리가 부끄러울 정도로 크게 울렸지만 니노미야의 손은 부끄러움을 모르고 바지 속으로 거침없이 쳐들어갔다.
“아, 흐응... 거, 거기는 좀...”
“왜애. 싫지 않다며.”
아니 그건 맞는데 넌 수치심을 모르냐고...! 오노는 지금 쥐구멍에라도 숨고싶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온몸을 뜨겁게 쓸어내리는 손길이 기분이 좋아서 녹아내린 마시멜로처럼 오노가 니노미야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고개를 젖혔다.
말 잘 듣는 고양이를 보는 것처럼 니노미야가 사랑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다 좋은데 말야.
“당신은 이제 내거니까, 앞으로 다른 새끼들한테 이런 모습 보여주지도 말고 웃지도 마.”
안 그러면, 당신 미소를 본 새끼들을 죽여버리고 싶어질 것 같으니까.
그 직후 집어삼킬 듯이 그의 입술이 진득하게 덮쳐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