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
유키
※이 글은 ‘오늘은 안녕’과 ‘블랙 페앙’의 주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며,
사망소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실제 드라마 내용과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내용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여 열람해주세요.
손에 들고 있는 작은 상자에서 달그락 소리가 나고, 위태롭게 성당의 붉은 카펫 위를 걷던 발걸음이 엇나가 결국 주저앉았다.
흐느끼는 소리가 점점 웃음소리로 뒤덮였다.
그런 그의 주변으로 노란 레몬이 그의 주변을 가득 매웠다.
언젠가 자신이 살렸던 사람이 몇이었더라?
그럼, 이 손으로 죽인 사람이 누구였더라?
다시는 잃고 싶지 않은 것이 ‘의사로써의 생명’이었던가?
살리고 싶었다. 설령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발악이라도 그것이 너를 살리는 것이라고 믿으면서. 손이 붉게 물들고, 땀으로 범벅이 되어도, 무모한 수술이라며 너에게 죽음을 강요하는 여느 의사와는 다른 사람이고 싶었다.
난 다르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에, 아직 내가 고치지 못한 삶은 없었다. 병원 내에서 내 입지는 좁았지만 나를 고르지 않는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작지만 깊은 위치였다고 자부했다. 자의로 고른 환자들은 아니지만 그 수많은 수술들이 마치 노아의 방주에 선택받았던 동물처럼, 하나하나, 많은 환자들을 내 손으로 커다란 배에 선택해서 태웠다고 그렇게 믿었다. 그렇게 살렸다고 믿었는데.
떨어진 작은 상자에 손을 뻗자 닿은 나무의 감촉이 차갑다.
그렇다. 내가 그들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내가 선택된 것이었음을.
그것을 알고 있었다면, 너는 조금 더 행복한 엔딩을 맞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따뜻한 가족의 품에서, 모든 것을 네 손으로 정리하고 행복하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었겠지.
신은 나에게 노력과 재능을 주었고 복수심이라는 재앙을 주었지만, 너를 보냄으로써 이를 져버릴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떠날 때가 된 너를 보낼 준비를 하지 못했다. 잃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너를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이, 의사라는 이름의 교만이 깊은 칼날이 되어 가장 사랑하는 너를 내 손을 죽이게 되는 것이, 신이 주신 마지막 시련이자 토카이 세이시로라는 사람의 인생에 마침표를 찍게 해준 것이다.
*
*
나에 대한 어떤 사실이나 환경을 제외하고, 어떤 사람으로 보이는 가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의사라면 겉모습과 입으로 치장해도 의미 없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그저 실력으로 모든 것이 설명 가능하니까. 한 명도 죽이지 않는 것. 그것으로 모든 사람이 나를 사람을 살리는 ‘실력이 좋은 의사’라는 명함이 생기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무슨 짓을 해도 용서받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어떻든 살기 위해서, 살리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명함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 되어 주었다. 내가 그 명함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고 하면 오롯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움직였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이용하여 가려진 진실을 밝혀, 아버지의 오명을 벗기는 것. 그 진실을 쫓는 과정에서 너를 알게 되었다. 병실근처에서 너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간호사와 인턴들에게서 악성림프종, 그것이 코우타의 병명이었다. 이전 병원에서 가족에게 이식 수술까지 받았는데 재발이라고 했던가. 하며 너를 동정하는 시선과 말들을 지나 너는 천천히 걸어와 내게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주머니에서 떨어졌어요. 악마 같은 선생님이라고 유명하던데.”
내가 주워준 펜을 건네받자 너는 ‘인간미 있는 악마네요.’하며 웃었다. 곧 죽을지 모른다는 사람의 얼굴이라기엔, 환하고 밝아보였다. 그게 첫 만남이었다. 나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뒤를 돌아 도망치듯 병동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너를 처음만난 날, 너와 가족들을 보고 나는 어이없지만 마지막 끝자락에서 웃으며 떠난 아버지를 너를 보며 회상했다. 모든 사람의 비난과 질책을 지나 가족에게로 돌아왔지만 결국 아버지는 그 사이에 묻혀, 오명을 쓴 채 조용히 삶을 마감했다. 너는 그저 죽음 앞에 담담하게, 자신의 삶을 정리하려는 사람으로서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짊어진 짐이 네게서도 보이는 듯 했다. 결국 나는 그 날 잠들지 못했다.
그 이후로 너와 짧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된 것은 의외였다. 나는 환자에게 좋은 말을 해주지 못하는 사람이었기에, 너는 내가 그런 상황을 겪고 오면 나에게 작은 캔 커피를 건네주며 조언해줬다. 물론 그렇게 실천해본적은 없었지만. 죽음이 스쳐지나가는 병원에서 작은 행복이 되어준 것은 네가 처음이었다. 끈질기다며 너를 뿌리치기도 했지만 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래서 코우타가 곧 죽을 사람이라는 것을 잊은 채 지냈다.
여느 날처럼 수술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로비중앙에 앉아 소리 없이 우는 너를 보았다. 너도 인간이기에 더 오래 살고 싶고, 행복을 원하고, 이루고 싶은 일들이 산더미 같이 있을 것이다. 사는 것에 욕심이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 때 너의 손을 잡으며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어떤 불치병이라도 나을 수 있는 기적은 있다고 세상에는 네가 모르는 약도, 치료법도 아직 남아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너를 살리겠다고 약속했다.
때때로 결말이 정해져 있는 길을 걷다보면, 신은 감사하게도 희망과 기적을 선물해 준다. 하지만 희망이라는 것은 기적이 될 수 없고 기적을 희망을 삼아서는 오래 이어갈 수 없지만 결코 사람은 희망과 기적을 구분하지 못한다. 결국 기적을 희망삼아 나는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너에게 살고자하는 욕심을 주고, 독과 같은 희망을 주고 말았다.
*
*
포기하지 않았다. 온갖 치료를 받고 죽을 고비를 몇 번을 넘겼지만, 내가 그에게 가면 항상 웃어보였다. 그렇게나 나를 믿었는데. 신은 자신의 아이를 붙잡고 넘겨주지 않는 나에게, 이 아이를 돌려보내라는 듯, 점점 더 상황이 악화되어갔다.
결국, 지치고 망가진 너는 심장외과의였던 나에게까지 부탁이 들어왔다.
‘코우타씨랑 아시죠? 지금 상황이 안 좋습니다. 심장까지 망가졌어요. 이러면...’
어쩔 수 없었다. 더는 네가 바로 수술을 받아들일 수 있는 몸 상태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나는 그래도 심장외과에서 가장 빠르게 수술을 마칠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 부탁을 받아들였다.
“선생님이 제 수술을 해 주신다구요?”
“그래, 적어도 심장 때문에 죽진 않겠지.”
“혹시 제가 죽어도, 수술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내가 말했잖아. 절대로 죽지 않는다고.”
“만약에, 제가 당신을 떠나도 그 날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해도. 절대 자책하지 않기로 약속해요.”
“...”
“선생님 때문에 살겠다고 약속했지만, 지금은 제 의지로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니까요. 자, 얼른요.”
“그래, 약속할게.”
너는 웃으며 내 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걸었다. 이걸로 내가 자신이 죽어도 슬퍼할 이유를 조금 덜어 냈다면서. 그런 소리 말라며, 당장 수술이 얼마 안 남았으니 푹 쉬고 있으라고 하며 방을 빠져 나왔다.
며칠 뒤 수술 날이 밝았다. 수술실로 향하는 길이, 처음으로 무겁게 느껴졌다.
수술실에 들어가자 너는 차가운 수술실에 잠들어있었다. 그래, 늘 하던 것처럼 너를 살리는 것. 그것만을 생각하며 수술을 시작했다.
그렇게 순조롭게 진행되던 수술에 문제가 생겼다. 항암치료로 약해진 몸이 문제였다. 수술이 점점 길어지고, 심장만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더 이상 무리하면, 너는 다시는 눈을 뜰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서둘러 수술을 마무리했다.
코우타의 몸은, 심장만이 멀쩡하게 되었다.
문제는 더 이상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코우타의 목숨을 쥐고 있다는 것이었다.
너를 담당하는 의사는 담담하게, 내게 말했다.
‘그래도, 심장은 수술이 가능했기에 부탁드린 겁니다.’
‘내원할 때부터 코우타씨가 살 수 있을 지는 미지수였어요.’
말 그대로 돌려 표현 했던 것이다. 시한부라는 것을.
차트에 빼곡히 적힌 전문용어들과, 날짜, 약을 투여했다는 말들이 적혀도 그 맨 아래엔 결국 네가 죽는 날짜와 시간이 새겨질 것이다. 그 운명을 바꿀 수 있던 것은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다.
희망은 누구나 가질 수 있기에 더욱 허상에 가까운 일이며 기적이라는 것은 차곡차곡 만들어진 노력이 만들어준 예상하지 못한 결과물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능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너는 희망을 가졌지만 다시 일어날 수 없었고, 노력했지만 기적에 닿지 못했다.
나는 그렇게 덧없이 너를 보내주어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너는 그렇게 말했다.
당신을 사랑해서 희망을 가졌고 함께하고 싶어서 기적을 바랬다고.
나는 울면서, 사랑하는 나를 두고 어디에 가려고 하냐며 너를 질책했지만 너는 말없이 나의 손을 잡아줄 뿐이었다.
*
*
너의 장례식은 작은 성당에서 하게 되었다.
차마, 사람이 많이 찾아오는 낮에 가지 못하고, 밤에 성당을 찾았다.
가족들은 내게 코우타 이야기를 하며, 아무도 해주지 않으려던 심장수술을 해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네게 줄 꽃다발을 전해주고, 오래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 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그 수술이 아니었으면 너는 조금 더 살아있었을지도 모르지.
아니, 애초에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너는 편하게 네 방식대로 삶을 정리할 시간을 가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여전히 너를 그리워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만과 오만에 빠져 아무것도 보지 못했던 자신을 혐오하며 삶을 살아간다. 이런 나를 사랑했던 너는 모든 것을 알기라도 한 듯 나에게 자책하지 않기로 약속하자고 했지만,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너와의 약속은 단 하나도 지키지 못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 욕심과 자만이 낳은 결과물이기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수 없어, 코우타.
내가 살린 사람은 수 없이 많고,
결국 이 손으로 결국 너를 죽였고,
다시는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므로.
토카이 세이시로는 속죄라는 이름으로 너를 사랑하고 있다.